자가면역질환 앓는 김준태씨
강직성척추염·크론병…연이어 찾아와
“전공 바꾸고 병 이해하는 동반자 찾아”
 
 
Untitled-6.jpg‘취직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11년 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김준태(34)씨의 일기장엔 이런 문구가 많이 등장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당연한 일상인 취업·연애·결혼, 그리고 아빠가 되는 일이 그에게는 넘지 못할 산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이 즈음 그는 강직성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몸의 면역반응 이상으로, 척추에 염증이 생겨 결국 뼈가 대나무처럼 붙어버려 움직임에 제약이 따르는 난치성 희귀병이다. 
 
“대학교 3학년 때인 97년부터 허리 통증이 시작됐어요. 처음엔 디스크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강직성척추염을 의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HLA-b27 유전자가 없어 가능성을 배제했는데 결국 그 병이 원인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다리를 심하게 절었고,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도 채 10m도 뛸 수 없어 버스를 놓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원망도 하고, 절망도 했죠. 당장 취직 걱정부터 되더라고요.”
 
유전공학을 전공했던 그의 꿈은 제약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유학의 꿈도 시나브로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강직성척추염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신약 개발자의 꿈을 접고 뒤늦게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할 수밖에 없었다. “고정된 자세로 오래 있으면 통증이 심해져요. 강의를 들을 때도 허리가 뻣뻣해져 2시간에 한 번꼴로 양호실에 누워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컴퓨터는 그나마 제 스스로 시간조절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불행은 연이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엔 소화기 계통 희귀병인 크론병까지 발병했다.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가고 나서야 크론병 때문에 생긴 장폐색임을 알게 됐다. 강직성척추염과 마찬가지로 크론병도 자가면역 질환이다. “무신론자인 제가 저도 모르게 기도를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2005년까지는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장폐색이 와 병원에서 음식물을 빼내야 했어요.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죠. 절망감이 저를 지배할 때이니까요.”
 
몸의 고통은 곧 마음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밝았던 성격도 점차 소극적이고 부정적으로 변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했던 그였기에 절망감은 더 컸다. 그나마 그를 나락에서 끌어올린 건 각고의 노력 끝에 2005년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 컴퓨터엔지니어로 취직한 일이었다. 이때까지도 그에게 연애와 결혼은 남의 얘기였을 뿐이다. “희귀질환을 두 개나 갖고 있는 절 좋다 할 여자가 있을까 싶었죠. 유전력이 있는 병이기에 운이 좋아 결혼을 해도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고 있었을 때고요.”
 
하지만 그는 지난해 결혼을 했고, 올해는 예쁜 딸을 낳았다.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2년 전부터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병과 상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최대의 적인 스트레스도 될 수 있으면 받지 않으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면 그가 좋아하는 영화와 만화, 드라마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생활의 지혜라고 할까요? 제가 갖고 있는 건강의 핸디캡을 다 인정했죠. 그 다음에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어요. 노력밖에 없더군요. 저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결혼, 취업, 육아 문제를 가장 걱정해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내 몸에 맞는 일을 찾았으니, 이제는 내 몸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 거죠. 운도 좋았고요. ‘왜 나는 안되나’ ‘왜 나는 못할까’ 좌절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핸디캡을 인정한 뒤부터 통증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성격도 예전의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다시금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니, 저절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그의 아내는 같은 회사 동료다.
 
강직성척추염과 크론병은 점점 나빠지기는 해도 좋아지지는 않는다. 통증은 계속되지만, 완치는 없다. 꾸준히 몸을 관리해야 현재 상태를 유지시키고, 악화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식단조절은 필수다. 그는 점심시간과 잠자기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운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크론병 환자들은 음식물의 섭취율이 떨어져 몸이 왜소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주로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죠. 강직성척추염 증상 완화를 위해 스트레칭도 하는데, 제 경우는 유산소운동은 금물입니다.”
 
그는 새해를 맞아 새로운 목표를 하나 더 세웠다. 지금보다 ‘더 밝고, 건강하게 살기’다.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내와 딸에게 듬직한 남편, 건강한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한다. “제 병이 호전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저와 같은 병을 앓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면 행복도 더 빨리 오고, 행복지수도 높아집니다. 제 딸도 저와 같은 병에 걸릴 수 있겠죠. 그래도 아이를 낳은 건 언젠가는 치료법이 개발돼 완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희망을 잃으면 몸도, 건강도 잃습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김준태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