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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금융·급식 최우선은 나눔…떡집도 동참
 풀뿌리 협동조합 천국…노인·노숙인 생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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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는 세상을 바꾸는 행동이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느냐에 따라 미래 세상이 달라진다. 환경, 인권, 나눔 등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기업의 제품을 사면 그런 회사가 늘어난다. 반대로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는 귀찮은 일이다. 그런 가치를 담은 재화나 서비스는 아직 드물기 때문이다.
 
 
15개 단체 조합원과 회원 숫자만 3만 명
 
원주시는 그렇지 않다. 친환경 유기농산물 매장, 주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금융 기관, 예방의학에 관심이 많은 의료기관, 수익을 공익적인 활동에 쓰는 떡집과 기름가게까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윤리적 소비에 동참할 곳이 널려 있다.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복지기관 등 15개 단체가 제공하는 ‘윤리적’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조합원과 회원의 숫자만 3만 명이 넘는다.
 
여러 단체에 중복 가입한 이들이 꽤 많지만 로컬푸드로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는 어린이집과 초·중학생의 수가 1만 명이 훨씬 넘기 때문에 원주에서 윤리적 소비를 경험한 이들은 3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31만 원주시 인구의 10%가 넘는 셈이다. 최혁진 원주의료생협 전무는 “원주에서는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원주시에서 이처럼 윤리적 소비가 활발한 것은 농민과 도시 서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협동조합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생활 운동 기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단체가 친환경급식지원센터다. 2008년 발족한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은 로컬푸드 운동, 즉 우리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로컬푸드 운동은 같은 지역에 사는 농민의 자립을 돕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농산물이 이동하는 거리, 푸드마일리지를 단축해 석유 소비를 줄여 환경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900억 원 조합원 1만5662명, 40년 ‘뿌리’
 
원주의 로컬푸드 운동은 친환경급식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읍면 지역 22개 초등학교, 7개 중학교, 36개 어린이집이 참여하고 있다. 친환경급식지원센터는 로컬푸드로 조리한 도시락을 결식아동 766명에게 배달해주는 사업도 함께 벌이고 있으며 ‘행복한 달팽이’라는 로컬푸드 식당도 운영중이다.
 
로컬푸드 운동의 중심에는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과 농민 조직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1985년 만들어진 원주한살림생협은 5337명의 조합원에 한 해 32억 원, 89년 세워진 원주생협은 1500여 명의 조합원에 21억여 원 규모의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조합원에게 공급한다. 두 생협이 운영하는 매장도 6개나 된다.
 
원주에는 윤리적 소비가 가능한 금융기관도 있다. 72년 설립된 밝음신용협동조합.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인 등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일을 주로 해 온 밝음신협은 자산규모 900억 원, 조합원 1만5662명의 간단치 않은 풀뿌리 금융기관이다. 밝음신협은 금융업무뿐 아니라 조합원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문화·복지 사업도 펴고 있다. 의료서비스도 윤리적 구매가 가능하다. 뜻있는 의료인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든 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서민 농민 등 소외계층의 자립과 복지가 중심
 
원주시의 윤리적 소비 인프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곳의 단체들은 생각있고 여유있는 이들이 모여 그들만의 경제시스템을 갖추는 게 아니라 서민이나 소외계층의 자립과 그들을 위한 복지시스템 구축을 늘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한다. 원주의료생협이 운영하는 재가복지사업단 길동무, 성공회원주나눔의 집에서 만든 사회적 기업 햇살나눔, 햇살지역아동센터, 자활사업 참여자가 조합원인 누리협동조합 등이 그런 곳들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기관도 있다. 노인과 노숙인들의 생협이다. 전국에 하나 뿐인 노인생협은 원주시의 초등학교와 계약을 맺어 청소용역 사업을 펴고 있고 ‘만남의집’이라는 식당을 운영한다. 원주나눔의집에서 운영하는 갈거리협동조합은 노숙인이 함께 참여해 만든 기관으로 노숙인에게 필요한 생활 자금을 대출하는 일을 한다. 자본금 규모도 4억 원이나 된다.
 
71년 밝음신협을 만들며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한 지 40년. 원주는 이제 협동조합의 도시, 윤리적 소비의 메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주/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씨즈-한겨레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원주는 왜?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이 비결
 지역 현안에 머리 맞대고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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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사이의 협동’. 원주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정착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여느 지역과 달리 이 지역의 공동체 운동 단체들은 일찍부터 힘을 모았다. 그 중심에는 2003년 만들어진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가 있었다.
 
원주는 보수적인 지역이다.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1970년대 벌였던 반독재민주화투쟁과 지역공동체 운동의 눈부신 전통이 있었지만 그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적었다. 72년 남한강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지 주교가 독일에서 모금한 291만 마르크로 시작한 지역 공동체 운동은 100여 개의 조합을 만들었지만 그 또한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서 ‘운동’은 늘 외로웠다. 하지만 뭉치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학교급식조례, 친환경농업지원육성조례, 보육조례 등은 협의회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일이었다. 회원 단체들은 화상경마장 유치 반대, 원주시예산감시, 재개발 반대 등의 지역 현안에 늘 어깨를 겯고 참여했다.
 
협의회는 2009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로 거듭난 뒤 참여 단체들 사이의 협력체제를 더욱 긴밀히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네트워크 참가 단체는 해마다 함께 정기총회를 열어 함께 할 일을 논의한다. 체육대회와 송년의밤 행사도 공동으로 연다. 월간지 형태로 발간하는 공동신문 <원주에 사는 즐거움>은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튼튼한 고리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김선기 국장은 “회원 단체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사업을 매개로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며 “원주를 스페인의 몬드라곤처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